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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에 식상하게 '아버지'라고 답하지는 않는다. 존경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존경한다고 말하는 순간, 아버지는 나에 의해 완벽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 짐을 지게 될 수도 있기에 굴레를 씌워드리고 싶지는 않다. 대신 아버지가 나를 기른 방법 중 대다수의 것들은 내가 배우고 싶다고 말씀 드린다. 덧붙여 솔직한 마음으로 나는 그럴만한 능력이 안된다는 것도 나지막이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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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참 멋진 분이셨다. 유년기에 어머니보다 되려 아버지와 가까웠다. 대화를 많이 나누고 교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에 부대낌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부딪힐 일이 별로 없었다는 게 맞다. '공부하라'는 말 빼고 모든 면에 걸쳐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본인의 생각에 나를 맞춰서 키우려고 했던 어머니와는 달랐다. 아버지는 내가 스스로 자라나도록 놔두셨다. 고입 시험을 앞뒀을 때, 고2 때 운동부와 하위권을 다툴만큼 공부에 흥미를 잃었을 때 딱 두 번 나를 불러놓고 이야기를 얘기 좀 하자셨다. 그때도 아버지는 '정신 좀 차려라'만 연발했던 어머니와 달리 '니가 정말 하고싶은게 뭐니'를 물으셨고 굵직한 결정을 도우셨다. 아버지의 이런 교육방식이 물론 100%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해야 했던 나는 지나치게 완벽주의의 성향을 갖게 됐고, 남들에게 일을 맡기고는 불안해서 결국 내가 다 하고야 마는 성격을 갖게 됐으니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도, 닥달하는 것보다는 이게 나았다. 결과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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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말이 많지 않으시다. 그래, 또 모른다. 친구분들을 만나시거나 회사에서는 말이 많으실지도... 적어도 집에서는 말이 적으시다. 말이 많으면 실수를 한다는 중론을 지키시는 분이라서 그런지 필요한 말씀만 하신다. 그런 무게감이 좋았고, 무게는 곧 존재감이자 신뢰였다. 빨리 어른이 되어서 아버지와 함께 신문을 들추고 저녁 뉴스를 보며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와 그 부조리함, 그 간극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면서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셨지만 합리적인 대답을 할 수 없는 스스로가 답답해서 정치 선생님을 붙잡고 한두시간을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거짓말처럼 나는 '어른'이라고 불릴만한 나이가 되었다. 매일 꼬박꼬박 두개의 신문을 보고 눈을 뜨고 하루를 마무리 할 때 뉴스를 본다. 이제 아버지와 대화를 할 만한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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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버지와 더이상 대화를 나눌 수가 없다. 아버지는 3년 전부터 급격히 변하기 시작하셨다. 매스컴에서 흔히 말하는 '노무현을 지지했다가 실망하고 전향한 수도권 중년 남성' 중 한 명이 되셨다. 보수적인 기독교 색채도 한 몫을 더한다. 가정과 국가 같은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독교 정신이 일상 생활까지 깊게 스며들어 반정부 시위를 하는 사람을 '빨갱이'라고 혀를 차는 모습을 자주 보이신다. 아침마다 현관 앞에 배달되어 있는 한겨레 신문을 보며 '이것들은 완전 좌파놈들' 이라는, 길가는 행인으로부터 들었다면 논리적으로 설명해보라며 따질만한 말을 빈번하게 뱉으신다. 물론 아버지의 말씀이 모두 맞거나 틀리거나 그런 것은 없다. 그 어떤 사람도, 매체도, 생각과 사상도 완벽할 수는 없기에 비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비판이 아닌 비난만 하신다. 그런 아버지는 MBC 뉴스를 보는 나를 못마땅해 하시고 한겨레 신문은 보지 말고 조선일보만 보라신다. 뉴스를 보다가 조금만 비판적인 말을 하면 '아무튼 너는 세상을 곱게 보지를 못하는 구나.' 라신다. 가슴이 찢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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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싶은 내 꿈은 정녕 '꿈' 이었던 것일까. 나이가 들면 누구나 변하는 것일까. 아버지 연배의 선생님들에게서 대학공부를 하며 지금의 내가 되었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해야 할까.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와 고뇌를 티끌만큼씩 이해하면서 되도록 편이 되어드리고 지원군이고 싶은데, 내 행동이 아닌 생각을 재단하는 아버지가 숨이 막힌다. 아버지처럼 자식을 기르겠다는 마음을 갖게 한 숱한 장점들을 하나 둘 씩 까먹고 있는 요즘이다.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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