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20일
얼음
‘얼음, 땡!’ 어린 시절 친구들과 즐겨했던 놀이다. 술래잡기의 일종인 이 놀이는 술래가 잡으려고 할 때 ‘얼음’을 외치고 멈추면 다른 사람이 ‘땡’ 하고 쳐 줘야 움직일 수 있다. 이 놀이의 핵심은 ‘얼음’과 ‘땡’의 빠른 순환에 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멈춰있으면 게임은 금방 끝나버린다. 반대로 한 사람도 ‘얼음’이지 않으면 술래 혼자 기진맥진해진다. 심할 경우 토라져버리기도 한다. 이런 날은 땅거미가 지기도 전에 게임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얼음’과 ‘땡’의 순환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함께 노는 친구들 간의 화합과 희생이 필요하다.
무슨 어린 애들 놀이에 거창하게 ‘화합’이니 ‘희생’이냐 할 수 있다. 모르시는 말씀. 얼음상태로 멈춰있는 친구를 구하러 가는 길은 쉽지 않다. 나를 노리고 있는 술래를 피해야 한다. 그러다 내가 붙잡혀 도리어 술래가 될 수도 있다. 술래에게 잡힐세라 냅다 내달리다보면 앞으로 고꾸라져 무르팍이 까지기도 한다. 술래의 기분을 잘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나 잡아보라며 깐죽대기만 하면 얼마나 얄밉겠는가. 술래가 잡을 마음을 잃지 않도록 적당히 동기 부여를 해줄 수 있어야 모두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화합과 희생을 모르는 친구는 ‘너 빠져’ 소리를 듣게 된다. 도망 다니다 힘들면 무조건 ‘얼음’을 외치면서 다른 친구를 구해주지는 않는 친구들이 꼭 있었다. 술래를 약 올리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게 하는 못된 친구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안한다고 구경하다가 재미있어 보이면 그제야 나도 끼워달라는 친구도 있었다.
어린 아이들의 놀이인데 세상살이와 퍽 닮았다. 살다보면 ‘너 빠져’ 라고 외치고 싶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나도 예외일 수 없다. 주위 사람은 어떻게 되던지 혼자 살겠다고 요리조리 도망치는 사람은 다음 판에서 제외 대상 1순위가 된다. 내 할 일만 열심히 하고 손해 보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얼음’을 외쳤을 때 기꺼이 ‘땡’을 쳐줄 사람은 많지 않다. 힘에 부쳐 보이는 친구를 모른 체 지나치는 사람이 술래가 되면 아마 꽤 긴 시간동안 술래를 해야 할 것이다. 지나치게 승진에 집착해 동료를 살피지 않던 직장 내 왕따가 그렇고, 조별활동은 대충하다가 마지막에 돋보이려고 발표를 맡겠다는 무임 승차자가 그렇다.
어린 애들이 매일같이 ‘얼음, 땡’을 재미있게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어른들의 놀이는 재미도 없고 싸움만 생긴다. 옆 자리 동료가 멈춰서있을 때 등 두드려주며 ‘땡’하고 녹여주는 인간다움이 모자란다.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남을 위해 달려가는 친구의 모습을 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나 역시 ‘얼음’만 할 줄 알았다. 무릎이 깨지면서까지 친구에게 달려가 ‘땡’을 쳐 준 일은 오래 전이다. 참 팍팍하다. 동네 놀이터에서 어린애들이 ‘얼음, 땡’ 하는 것을 들여다봐야겠다. 그리고는 요새 힘들다는 친구에게 밥이라도 한 끼 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얼음’에서 풀려나 다른 친구에게 ‘땡’을 쳐주라면서.
# by | 2008/08/20 00:38 | - 작문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