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몰입교육, 결국 다시 학원으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는 데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붓겠다’고 한다. 그리고선 들고 나온 대책이 영어 몰입교육이다. 내년부터 농어촌 지역에 설립하겠다고 하는 기숙형 공립학교에서부터 영어로 모든 교과목을 가르치는 몰입교육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맞장구라도 치듯 시도교육감들은 몰입교육의 신속한 확대를 주문했다. 영어 하나를 위해 중등교육 전체를 희생시킬 작정인가 보다. 영어가 공용어나 상용어가 아닌 외국어이고 초3~고3 학교 영어수업시간이 950여 시간에 그치는 현실을 비추어 영어나 수학, 사회, 과학 등을 영어로 가르치겠다는 것은 단편적인 방법론에 지나지 않는다.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 구호를 앞세워 1997년 초등학교 3학년부터 연차적으로 주1~2시간 영어수업을 도입했다. 그러나 초중고 학생들의 조기유학은 구제금융 직후 주춤한 것을 빼고는 증가세를 거듭해 왔다. 이민이나 부모의 국외근무 동행을 뺀 순수 조기유학생은 97년 3274명에서 2004년 1만 6446명으로 늘었다. 또 영어 사교육은 취학 전 어린이로 버졌다. 2005년 초등 1~2학년 어린이들은 76%~65% 가량이 이미 영어 학습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 진학을 겨냥한 초등 고학년~중학생의 사교육이 가세했다. 2000년 과외 금지 위헌 결정과 2001년 특목고 지정 권한의 시도교육감 이양에 따른 특목고 증설이 계기였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지난해 3월 ‘사교육 실태 및 대책’ 자료를 보면, 영어 사교육은 초등 저학년 때는 의사소통을 위해 받다가 중고교로 올라가면서 입시 대비로 바뀐다. 특히 특목고 진학을 바라는 초등학생의 94%, 중학생의 88%가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영어 몰입교육 도입, 초등 1~2학년 조기 영어 교육 확대 등 이명박 차기 정부의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이 자율형 사립고 증설 등 ‘고교 다양화’와 맞물려 사교육을 더욱 부채질 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을 싣는다.


교육 전문가들은 영어로 하는 영어수업의 전제조건으로 교사의 영어 구사력과 함께 학생들의 비슷한 수업능력, 20명 가량의 작은 학급 규모 등을 꼽는다. 현재 일부 사립 초등학교가 이런 조건을 충족하고,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는 30명 안팎 학급이지만 학생들의 수업능력이 비슷해 원어민 교사 등 영어로 하는 수업이 일부 이뤄지고 있다. 반면 일반고에서는 이 두 조건과 거리가 멀어 우리말로 하는 영어수업마저 쉽지 않다는게 현장 교사들의 반응이다. 앞으로 자율형 사립고 100곳, 기숙형 공립고 150곳 등이 생겨나 상위권 학생들이 특정 학교로만 몰리면 이런 현상은 더욱 굳어질 공산이 크다. 지금도 특목고 등으로 우수 학생들이 빠져나가 중하위권 학생들만 있는 일반고에서는 수업 효과를 높이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대입 자율화로 대학들이 대학별 영어시험을 치겠다고 하면 경제력으로 사교육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일부 계층 자녀들의 대입 통로는 더 넓어질 가능성도 있다. 특수한 고교를 만들어 학교를 양분하면 일반고의 영어수업은 학생과 교수 모두에게 고통의 시간이 될 것이고 여건이 좋은 소수 학교만 혜택을 누리게 될 수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영어교사의 재교육 같은 대책은 검토한다면서도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이나 일반고 학생들의 수업 수준 제고 등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집터가 엉망인데 집만 새로 지으면 무슨 소용인가. 영어 교육 강화에만 그치는 미시적 대책보다는 학벌사회를 타파하려는 거시적 접근을 해야 할 것이다.

by analogist | 2008/03/01 15:37 | - 칼럼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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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김민아 at 2008/03/03 01:32
반갑다 수아! 이글루에서 보게 될 줄이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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