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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단문

* 논작 스터디에서 작성한 글임을 밝혀 둠


결국 나는 단체를 탈퇴했다. 십 수 년 간 알고 지낸,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뛰쳐나오고야 말았다. 대학시절, 책 보다는 화염병과 짱돌을 들고 붉은 깃발을 쳐들고 민주화를 외치던 우리였다. 77학번부터 87학번까지 나이와 남녀, 출신 지방을 뛰어넘어 손을 맞잡았다.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인간띠를 만들어 거리로 나서면 함성소리가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듯이 아찔하게 울렸다. 대학 4년을 시위로 보낸 결과, 꿈에도 바라던 민주화라는 것을 이루게 되었다. 흩어진 한 둘을 제외하고 시위를 함께하던 이들이 모여 한 단체를 만들었다. 피로 이룬 민주주의를 지키고 키우겠다는 큰 뜻이 있었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품은 뜻은 흐려지기 시작했다. 노동자와 빈민을 대신해 투쟁하는 우리의 지갑은 점점 두꺼워져갔다. 좋은 차를 굴리고, 넓은 집에 살면서 아들, 딸은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 직급이 낮은 직원들의 월급을 착취하고, 힘이 약한 여자 직원을 희롱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자기 배 채우느라 국민들을 짓밟았다고 우리들이 끌어내린 그들처럼, 시나브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눈치 챈 기자들이 취재라도 할라치면 거친 단어로 쓰인 성명서를 내 싸우기도 했다. 아전인수가 따로 없었다.

내 논에 지나치게 많은 물을 대다보니 곡식이 잘 자랄 리 만무했다. 우리 논은 썩어가고, 끌어 쓸 물이 없는 다른 논들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단체는 내부 비리와 임원진의 장기 집권으로 악취를 풍겼다. 우리에게 칼날을 들이대는 다른 단체를 죽이기 위해 없는 먼지를 만들어 냈고, 결국 털어서 먼지가 난 그런 단체들은 문을 닫았다. 힘없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나섰던 수 십 년 전 우리들은 이제 없었다. 자신이 속한 단체만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으면서 안에 고인 구정물이 새지 못하게 막느라 바쁜 이기주의만 살아서 꿈틀대고 있다.

결국 나는 단체를 탈퇴했다. 바깥세상에 있는 수많은 '우리'들과 손잡기 위해서, 수 십 년간 '우리'라 부른 썩은 무리를 빠져난왔다. 혼자된 나는 하루하루 광야를 걷는 고독에 넘어질지 모른다. 휘청거릴 때마다 나는, 기억할 것이다. 내가 속한 공간만 지키기 위해 우리라는 이름으로 손을 잡지 않겠다는 다짐을 말이다. 나와 다른, 우리 아닌 우리와도 기꺼이 어깨를 맞대고 띠를 이으려 한다. 민주주의를 낳은 그 날의 수많은 우리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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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narapark 2009/05/12 16:10 # 삭제 답글

    제목이 우리보단 동지가 나을듯...
  • analogist 2009/05/12 17:16 #

    이게 스터디에서 정해주는 제목이거든 ㅋㅋㅋ
  • narapark 2009/05/13 14:07 # 삭제 답글

    아아, 주제를 주고 쓰는 글이구나. 흐음.. 우리 모임도 이런식으로 하면 좋겠군!
  • 지나가던 사람 2009/05/14 22:25 # 삭제 답글

    어떻게 이곳에 들어오게 됐나 봤는데 시작은 <Zeitgeist>였더라구요. 이글루스에서 이 영화를 검색하다가 '아타리마에' 블로그를 찾았고, 거기서 다시 링크를 타고 이곳에 온 거에요. 언론사 입시를 준비하나 봐요. 스터디에서 쓴 몇 편의 글과 간단한 페이퍼로 보이는 몇 편의 비평문을 읽었어요. "그렇군" 하고 그냥 돌아나가려고 하다가, 이곳은 꽤 개인적인 공간인 것 같은데 본의 아니게 남의 일상을 훔쳐본 기분이 들어서 글을 남겨요. 쓴소리지만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너무 아프게 듣지는 마세요.

    수아씨 글의 첫 번째 문제점은 리드가 좋지 않다는 거에요. 첫 두세 문장으로 읽는 사람의 시선을 낚아채야 하는데 거기에 실패해요. 이유는 도입부를 너무 안이하게 구성하기 때문이죠. 첫 문단을 어떤 말을 하기 위해 슬슬 시동을 거는 문단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가장 아끼는 말, 가장 하고 싶은 말을 첫 문장에 바로 박아 넣으세요. 첫 문단에서 바로 글 전체의 판도를 읽어낼 수 있게 만들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충격적인 몇 문장으로 시선을 붙잡아 둘 수 있어야 해요. 시험관이나 당신을 모르는 독자들은 인내심이 적고, 대부분 끝까지 글을 읽지 않는다는 걸 명심.

    두 번째 문제점은 내용의 진부함이에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문제의식이 평이하고 단조로우며 그 디테일의 부족해요. 그래서 좀 모호한 감도 있어요. 항상 글을 쓸 때 생각하세요. ‘왜 내가 이 글을 쓰지?’ 여기서 방점이 찍힐 부분은 ‘나’에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 그건 세상에서 바로 나만이, 이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수아씨의 글은 굳이 수아씨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처럼 보여요. 독창성, 그러니까 삐딱하게 보든, 뒤집어서 보든, 거울에 비춰 좌우를 바꿔보든, 어떻게든 세상을 다르게 보는 것이 글을 끝까지 읽게 만들어요. 이게 하나마나한 소리가 아닌가, 늘 경계할 것.

    이제 예를 들어볼게요.

    이 위에 "우리"라는 글은 어떤 "단체를 탈퇴"한 어떤 386의 심경을 담고 있어요. 하지만 그 심경이란 게 자신이 몸 담았던 지난 공동체의 과오에 대한 모호한 자기반성과 새롭게 맞을 공동체에 대한 역시 모호한 각오와 다짐이에요. 글의 내용은 누군가의 심경인데, 그 누군가가 구체적이지 않으니(두 번의 “어떤”), 글이 전반적으로 둔중하죠(두 번의 “모호한”). 이 글은 참신하지도 그렇다고 명징하지도 않은 문학적인 수사로 그 둔중함을 배가시키고 있어요. 모두 386이라는 불명료한 범주를 화자로 삼은 기본적인 세팅 탓이죠. 이럴 경우 상식적인 해결 방법은 두 가지인데, 애초에 생각한 그 ‘심경’을 비틀고 짜서, 곧 변태로 만들어서 그 이면을 보거나, 그 ‘심경’을 그대로 살리고 싶다면 시사적인 소재로부터 상황의 구체성을 빌려와 글을 날카롭게 만드는 거에요.

    한편 문체면에서 보면 “결국 나는 단체를 탈퇴했다.”라는 첫 문장은 아무 힘이 없어요. 뒤늦은 자기 (죄)고백의 뜨거움도,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의 비장함도 없이 그냥 어떤 복잡한 심경을 ‘결국’이라는 부사 속에 눙치려고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죠. 뒤이어 따라오는 문장들 역시 생기가 없기는 마찬가지. 이 글이 지루한 느낌을 준다면 그 때문이에요. 내용도 진부하지만 상황설명이나 심리묘사의 문체도 남다르지 않다는 것. 화자에 충분한 이입이 안 된 탓이라고 생각해요. 또 ‘단체’의 철지난 영광을 설명하는데 첫 문단 전체를 소비하고 있어요. 하지만 수아씨가 쓰려고 하는 건 그게 아니라 그 단체를 탈퇴한 자의 눈으로 바라본 그 단체의 문제점과 그로부터의 깨달음이잖아요. 그럼 그 깨달음을 바로 첫 문장에 쓰세요. 인용구도 좋고 시적인 명제도 좋고 비유적인 상황도 좋은 뭐든 간결하고 명료한 (참신하면 더 좋은) 어떤 문장들을.

    남의 글을 읽어놓고 터무니없이 짧은 감상으로 기분만 상하게 한 건 아닌가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말로 하면 삼분도 안 걸릴 얘기들... 이해해주길 바라고 정진해서 좋은 성과가 있길 바라요.
  • analogist 2009/05/15 02:23 #

    말씀 고맙습니다. 제가 헤매고 있던 문제가 뭔지 딱 집어주셨네요. 이 글은 안그래도 스터디에서 지루하다, 재미없다, 이게 뭐냐 는 갖은 혹평을 받았습니다. 며칠째 고민하던 차에 지나가던 님의 조언을 들으니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게되었네요. 조언도 충고도 지적도 너무 감사합니다. 지적해주신 내용들 잘 참고해서 모난 부분 둥글게 다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만, 님께서는 제 이름도 불러가며 댓글을 다셨는데 상대적으로 저는 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받기만 하는 느낌이네요. 가슴이 콩알만한 저는 이런 일이 있을때면 익명성 같은 것들이 무서워집니다.
  • 2009/05/15 15:46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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