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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단문

저녁 9시를 알리는 TV 시보는 더 이상 정확하지 않다. 디지털 방송이나 위성방송으로 9시 뉴스를 본다면, 그 뉴스는 ‘9시 정각’에 시작하지 않는다. 요즘 방송국들은 아날로그 방송과 디지털 방송을 동시 송출한다. 디지털 방송의 경우 아날로그 동영상을 디지털로 변환(Encoding), 압축한 뒤 전파에 실어 보낸다. 이 작업에 약 0.5초가 걸린다. 따라서 디지털방송으로 뉴스를 보며 9시를 맞는 사람은 사실상 ‘9시 0.5초’ 뉴스를 보는 셈이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달했지만 70년대식 아날로그 방식과 디지털 방식이 공존하면서 생긴 일이다.

‘9시 0.5초’ 뉴스라는 사실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할머니는 TV를 켜두고 잠이 드셨다. 잠든 할머니 방에도 ‘9시 0.5초’를 알리는 TV 시보 소리가 울린다. TV를 끄고 이불을 덮어 드리려는데 할머니 손목에 채워진 손목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시곗줄이 낡을 때마다 몇 번씩 갈아 끼우면서도 15년 넘게 차시는 시계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새 시계를 사 드린다고 했을 때도 손사래를 치셨다. “이게 청와대에서 온 시계여. 여기 봐라 여기. 김영삼 대통령 이름이 딱 써 있잖여.” 할머니는 매일 상전 모시듯 시계 알을 닦았다. “대통령님 이름 적힌 시계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간디?” 대통령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레 모시던 시계는 한 여름 무더위에도 늘 할머니 손에 채워져 있었다.

할머니가 아시면 까무러칠 일이지만, 지금 대통령을 그렇게 존경하는 사람은 몇 없어 보인다. 대통령 시계는 여전히 만들어지지만 황송한 마음으로 차고 다닐 사람은 얼마나 될까. 국민이 그를 외면하는 이유는 거꾸로 도는 그의 시계 때문이다. 그는 소위 땡전뉴스가 있던 시절의 TV 시보에 맞춰 사는 모양이다. 그러다보니 잃어버린 10년을 되돌려 마치 연어라도 된냥 세월을 거슬러 오르려고 한다. 집권 2년 동안 그의 말과 행동이 그랬다. 연어의 회귀는 숭고하지만 그의 회귀는 그저 역행이다.

심지어 이제는 사람이 모이는 것조차 막는다. 자신의 역행을 바로잡아주려는 사람들이 광장에 모이는 것이 두려워서다. ‘9시 0.5초’ 뉴스를 ‘9시 뉴스’로 알고 보는 것이야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10년, 20년 민주주의의 세월을 거꾸로 돌려 땡전 뉴스 시계를 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래서야 어디 대통령 이름 적힌 시계를 가지려고 하겠는가. 잠 잘때도 대통령 시계를 차는 우리 할머니조차도 마다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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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아타리마에 2009/05/24 21:59 # 답글

    글의 도입 부분이 상당히 깔끔하고 매끔하게 시작됐는데?ㅋㅋ (실제로 나도 몰랐던 사실이었음;; 어쩐지 안방 TV소리랑 거실 TV소리랑 다르다 싶더니..;;)

    이 글이 칭찬 받았다는 글 맞지?? 음~ 확실히 좋아~ 괜히 아는 척 한다고 평가받던 7080글 보다 훨씬 나아졌어~ㅋㅋ (솔까말, 난 그것도 좋았지만.ㅋㅋ)
  • analogist 2009/05/24 22:31 #

    내 다시는 7080 이나 386 글 쓰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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