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가 사람을 잡는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 TV에는 비일비재하다. 나 역시 드라마에 세뇌된 선배오빠로부터 봉변 아닌 봉변을 당했다. 모 신문사 인턴 마지막 날, 옆자리에 앉아있던 선배에게 술 한 잔 권하려던 참이었다. “어우, 야. 가까이 붙지마라. 셔츠에 입술자국 찍히겠다.” 순간 술집 마담 아니면 짝 있는 남자를 꾀는 불여우 취급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볼이 시큰거렸다. 일어서려고 하자 당황한 선배는 “아니 그게 아니고, 드라마 같은데서 보면 입술자국 때문에 곤란할 때 많잖아.”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드라마가 사람 망치는 게 한 순간이다.
실제로 많은 드라마와 TV 프로그램에서 ‘입술 자국’은 외도의 가장 유력한 증거다. 빨랫감을 뒤지던 아내는 남편 셔츠에 찍힌 낯선 입술자국에 흥분한다. 그 입술자국의 주인은 대개 술집 마담이거나 내연녀 등 일상적인 여성의 이미지와는 멀다. 그들의 입술자국이 문란한 것이기에 자연스럽게 그들의 짙은 립스틱도 일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이효리나 이혜영, 엄정화를 필두로 짙은 핑크 립스틱은 트렌드가 되었다. 그녀들의 립스틱은 날개 돋힌 듯 팔린다. TV 드라마의 논리대로라면 짙은 분홍 립스틱을 바른 거리 여성들의 상당수는 유흥업에 종사하거나 누군가의 내연녀이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평범한 직장인 혹은 학생이다. 극 전개를 쉽게 하려고 쓰는 상투적인 이미지는 브라운관을 뛰쳐나와 거리의 사고까지도 잠식하고 있다.
TV는 짙은 립스틱만 불순한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 촛불 역시 건강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뉴스로만 접해야 했던 촛불은 TV의 이미지 만들기 작전의 좋은 표적이었다. 평범한 여고생, 아이를 등에 업은 가정주부, 토익 책을 덮고 도서관을 나온 대학생, 찌든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던 직장인은 자발적으로 초를 켰다. 건강을 담보로 졸속협상을 맺은 정부를 꾸짖기 위해서였다. 누구든 단상에 올라 의견을 말할 수 있었다. 곳곳에서는 즉석에서 시국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야말로 평화시위였다. 그런데 몇 공중파 뉴스는 시민들의 배후에 불온세력이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이는 스스로 나선 시민들을 누군가의 선동에 동조되어 나온 일반 대중으로 만들어 촛불 자체를 끄려는 시도로 분석됐다.
TV의 힘은 무섭다. 많은 여성들이 바르는 짙은 립스틱을 불순하고 위험한 것으로 만든다. 누구의 지휘 없이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도 TV 안에서는 배후의 지휘를 받는 시위대가 되기도 한다. 이런 이미지 작업은 촛불을 불순하고 위험한 것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지 못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TV가 보여주는 것이 모두 옳지 않고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할 방법은 없을까? 다음 촛불집회에는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나가야겠다. 불륜의 상징이라 불리는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불온의 상징으로 박제시키려는 촛불을 들테다. 빨간 립스틱을 바른 여자도, 촛불을 든 시민도 민주주의를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덧글
아타리마에 2009/06/07 23:41 # 답글
우아~ 이게 그 글이구나?멋진데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