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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스틱2 단문

지난해 이맘때 쯤 인턴생활 마지막 날, 옆자리에 앉은 남자선배에게 술 한 잔 따르려고 살짝 몸을 기울였다. 선배는 “야야, 이러지 마라. 잘못하다 셔츠에 립스틱 자국이라도 찍히면 어쩌려고 그러냐.” 라더니 껄껄거렸다. 얼굴이 시큰해져 자리를 피하려고 하자, “에이, 드라마 같은데 보면 그런 걸로 오해 많이 받으니까 해 본 말이야.”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임자 있는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가 된 나는 꽤 오랫동안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선배는 드라마 장면과 실제로 주변에서 빨간 립스틱을 바른 술집 여종업원 한 둘을 보고 지레 겁을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두 가지 사례를 보고 관련된 사실을 모두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을 과잉 일반화의 오류라고 한다. 드라마 작법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 붉은 입술자국은 불륜의 상징으로 쓰였다. 대개 그 입술의 주인은 내연녀이거나 돈을 보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악녀, 술집 여자 정도다. 평범한 여성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빨간 립스틱 역시 평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선배뿐만 아니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빨간 립스틱을 짙게 바른 여성을 평범하게 보지 않는 시선이 많았다. 다들 과잉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 립스틱을 짙게 바르면 ‘저 여자는 그렇고 그런 여자겠구나’ 짐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과 일 년 사이에 짙은 립스틱은 불륜의 아이콘에서 멋 좀 부린다 하는 여성들의 필수품으로 탈바꿈했다. 립스틱을 짙게 바른 거리의 여성들이 늘면서 더 이상 이상하게 쳐다보는 눈길도 없어졌다.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과 달리, 그들은 평범한 학생, 직장인, 젊은 주부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1년 사이에 짙은 립스틱에 대한 과잉 일반화의 오류는 사라질 동안, 새로운 오류가 생겼다. 지난해 초여름 밤 서울 광화문 일대를 밝힌 촛불이 바로 그것. 당시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를 외치며 촛불을 든 사람들은 평범했다. 먹을거리가 걱정된 주부, 퇴근길에 동참한 직장인, 도서관에서 뛰쳐나온 대학생까지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러나 몇몇 과격한 시위대와 단체가 시위의 중심인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보도되면서, 촛불 전체가 폭력적인 것으로 비춰졌다. 촛불이 불온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보도는 꽤 자주 전파를 탔다. 그런 뉴스를 자주 접하다가 촛불을 나쁘다고 생각하게 된 사람들도, 모르긴 하지만 적지 않은 듯하다. 소수의 과격한 촛불을 보고 ‘촛불’ 전체가 불온하다고 여기는 과잉 일반화의 오류에 빠진 것이다. 조금만 사람들이 모이려고 하면 ‘그 놈의 촛불’ 또 들까봐 막기부터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몇 가지 비슷한 사례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전체는 아니다. 불륜의 상징으로 쓰이던 짙은 립스틱은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이제 촛불에 대한 오류를 깰 차례다. 다음 촛불집회에는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촛불을 들어야겠다. 불온해 보였던 촛불이 사실은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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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아타리마에 2009/06/19 01:02 # 답글

    후후 결국은 새롭게 썼네~
    비슷한 거 같으면서도 확실히 뭔가 달라졌는데..
    뭐지?
  • analogist 2009/06/19 21:57 #

    TV를 빼고 과잉 일반화의 오류를 넣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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