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내 이기적인 욕망의 발설지

낮에는 분주하고 밤에는 화려하다. 그리고 새벽에는 쓸쓸하다. 주말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는 강남역. 그 중에서도 약속 장소로 꼽히는 7번 출구의 모습이다. 스무 살 여름부터 1년 남짓 강남역 7번 출구를 매일 드나들었다. 중국어 학원에 다니기 위해서였다. 매일 이곳을 오가게 되니 자연스럽게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또 숨겨진 의미도 찾게 되었다. 사실 찾게 되었다는 말은 맞지 않다.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었지만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게 맞다. 1년 반 동안 본 강남역 7번 출구에는 나의 숨겨진 모습이 있었다. 그것은 생각보다 더럽고 흉해 감추고 싶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수업시작은 오전 6시 30분. 학교생활과 병행해야 해서 새벽반 수업을 들었다. 집에서 학원까지는 지하철로 한 시간 거리.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잠에서 덜 깬 채로 지하철에 실려 오다시피 했다. 신기하게도 계단을 올라 출구를 나서면 잠이 깼다. 거리를 청소하고 있는 환경 미화원분들의 비질 소리 때문이었다. 아마도 내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을 그 시간부터 나오셨으리라. 휘황찬란한 도시의 밤이 토해낸 것은 엄청난 양의 쓰레기였다. 밤의 주인공은 집으로 퇴장하고 그 자리를 미화원 분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7번 출구와 학원 사이로 좁은 골목이 하나 나 있었다. 그 좁은 골목에서 무슨 쓰레기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두 사람이 한참을 치워도 끝나지 않았다. 쓰레기 냄새에 코를 막고 혹시라도 더러운 것을 밟을까 까치발로 걸었다. 예쁜 옷을 입은 날에는 혹시라도 미화원분들과 옷깃이 스칠까 유난을 떨었다. 두 달이 조금 지났을까. 그 골목을 지날 때면 가슴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가만히 얼굴을 마주한 미화원분들은 내 아버지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였다. 내 또래 아이들이 밤새 술 마시고 휘청거리며 뱉어놓은 것들을 내 부모님 또래의 그들이 치우고 있었다. 저렇게 번 돈으로 내 또래의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칠 거라는 생각에 목이 콱 막혀왔다. 날씨가 궂은 날에는 주책스럽게 눈앞이 흐려졌다. 학원 휴게실 창 너머로 그네들을 바라보았다. 잠깐 앉아서 쉬는 그들의 등은 유난히 굽어보였다. 금새 일어나 다른 곳으로 옮기는 그들의 뒷자락에는 커다란 숟가락이 댕그랑 거리며 끌리고 있었다. 숟가락 위에는 그들의 자식들이 앉아 있었다. 버거워 보이는 그 숟가락을 끌고 다시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커다란 숟가락은 쉽게 채워질 것 같지 않았다. 문득 어젯밤 퇴근하고 돌아오신 아버지 뒤춤에서 댕그랑 거리던 숟가락이 떠올랐다. 채워지기가 무섭게 나와 동생이 쪽쪽 빨아 댄 그 숟가락. 오늘따라 내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오랫만에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 우리가 자주 찾는 술집은 학원 맞은편 건물 2층. 좁은 골목 하나를 두고 나는 이렇게 다른 자리에 있다. 새벽에는 공부 하러 왔다가 미화원들을 보고 마음이 울컥하더니 밤에는 여기서 술을 마신다. 밤에 찾은 그 좁은 골목에는 새벽에 본 미화원들이 없다. 강남의 밤의 주인공은 내 또래의 젊은이들이다. 부모들이 숟가락 위에 어렵사리 모은 돈을 들고 나와 친구를 만나고 사랑을 나눈다. 기분 좀 낸다고 술을 마시다 보니 한 잔 두 잔 벌써 열두시가 넘었다. 울렁대는 속을 참지 못하고 웩하고 속을 게워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학원가는 길, 그 좁은 골목이다. 몸을 추스리고 나서려는데 전화가 울린다. 발신번호 '엄마'. 통화 버튼을 누르자 마자 어디냐며 윽박지르는 소리에 귀가 멍해진다. '지금 간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전화를 끊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3초도 걸리지 않는 시간이었다. 

엄마가 타 준 꿀물을 마시고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 입술 끝에 묻은 꿀물 맛이 달다. 엄마는 어젯밤 일을 잊었나보다. 지하철에 짐짝처럼 실려서 오다가 학원 등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급하게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짜고짜 돈 이야기부터 꺼냈다. '넌 아빠 얼굴 보고 싶지도 않냐' 며 말끝을 흐리는 아빠. 딱딱한 목소리로 고맙다고, 알았다고 말하자 일찍 들어오라신다. 전화기 너머 아빠의 목소리는 찬 새벽 공기를 덥힐 만큼 따뜻했다. 

수업 시간이 5분도 남지 않았다. 정신없이 뛰다가 순간 멈춰서버렸다. 익숙하던 비질 소리가 오늘은 내게 말을 걸었다. 7번 출구 앞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미화원 아저씨 뒤에 달린 숟가락에는 내가 앉아있었다. 부모님께 손 벌릴 줄만 아는 어린애 같은 내가 있었다. 미화원 아저씨의 굽은 등 너머로 엄마 아빠의 모습이 겹쳐졌다. 어젯밤 일이 생각나 어디론가 숨고 싶어졌다. 부끄럽고 창피했다. 더러운게 묻을까봐 유난을 떨던 내 모습이 섬광처럼 스쳤다. 더러운 것은 미화원 아저씨의 때 묻은 옷이 아니라 나밖에 모르는 내 모습이었다. 아버지의 돈으로 화려한 밤을 즐기고 성공해 보겠다고 새벽부터 학원에 나서는 이기적인 나.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정신이 멍 해졌는데 누군가 내게 말을 건넨다. "아가씨, 그 예쁜 옷에 더러운거 묻겠어. 조금만 기다려봐. 내 이거 마저 쓸고 나서 지나가. 그럼 좀 나을겨" 어젯밤 내가 뱉어놓은 욕망과 이기심이 거기 있었다. 엄마가 싸 준 꿀물 한 병을 꺼내 아저씨께 건넸다. 감사하다고 죄송하다고. 그리고 아저씨의 거친 손을 꼭 잡아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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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logist | 2008/06/26 15:47 | - 작문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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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타리마에 at 2008/06/26 16:12
좋은 글. 멋진 글. 호흡이 있는 글. 그리고 리듬이 있는 글.
감상이 있는 글. 하지만 좀 더 퐌타지 하고 상상력이 깃든 글이 보고싶이요~ㅋ
강남역 7번 출구로 이런 글을 쓰는게 보통 쉽지 않지만,
새벽의 환경미화원과 부모님의 대비 이상의 더욱 퐌타지하고 더욱 뒷통수를 아리게
만들 수 있는 진짜 수아만의 글!!ㅋㅋㅋ 농담이구!!!
진짜 이걸 뭐라 해야하지? 글 맵시가 너무 깔끔하고 이쁘다랄까?
도입도 전개도 내용의 이해도, 소재도 진짜 감탄케 하는 글이야~
이정도면 수필가라고 해도 믿겠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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